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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상은/e. 감성적인 개인공간

소탐대실 2

G.lory 2021. 8. 13. 10:11

 

 

 

주말에 고등학생 입시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간은 8:30 - 15:30. 한 달간 진행되는 프로젝트성 프로그램이었는데 이 학원에서는 처음 시행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큰 그림은 있었지만 세부적인 내용이 정립되어 있지 않았다.

 

 

그 프로그램 진행에 있어 첫 시간의 관리를 맡은 담당자는 나였고 프로그램 총책임자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하고 싶은지 메뉴얼을 만들어 놨길래 최대한 꼼꼼히 성심성의껏 학생들을 관리했다. 

 

 

이른 아침인지라 정직원이 먼저 출근하지 않은 날도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학원 문을 따고 들어가서 환기 시키고 에어컨 켜고 불을 켰다. 사실 정직원이 먼저 와서 해야할 일을 내가 한 것이다.

 

 

프로그램 진행도 마찬가지이다. 메뉴얼이 있었지만 실제로 일을 하다보면 생기는 문제점들에 대해서 피드백을 해줬고 그런 것들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며 프로그램 총 책임자는 나에게 정말 고마워했다.

 

 

나름 대치동의 큰 학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같은 4명의 관리 선생님의 근태의 흔적을 공식적으로 기록하는 절차는 없었다. (나중에 알바비 못받는 거 아닌가 내심 걱정도 함)

 

그러던 중 어느날 총 책임자는 나를 포함한 4명의 관리자한테 실제로 일찍 오거나 조금 늦게 퇴근하게 된다면 직접 엑셀 파일에 시간들을 다 기록하라고 했다. 시급으로 계산해준다고.

 

 

그래서 10분이든 5분이든 근태 파일에 기록을 했다. 

 

 

급여일은 매달 10일. 7월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서 원장이 나를 불렀다. 

 

원장 : A씨, 일을 너~~무 잘해줘서 고마워요. 근데, 7월달에 근무한 시간의 10분, 5분은 어떻게 계산해야 할까요?

 

: 아, 총 책임자가 이런 시간까지 모조리 기록하라고, 시급으로 계산해 주신다고 해서 적었어요

 

원장 : 그래요? 나는 못들었는데? 여튼 매일 7시간 * 5일 + 40분인데. 40분이 좀 애매하네. 그냥 7시간 * 5일로 

해도 되죠??

 

: ???? 네?? 네............ 뭐 그렇게 하세요.............

 

시급이 9000원이니까 40분이면 겨우 6000원 남짓이다. 내 입장에서는 사실 6000원을 받아도 살림에 큰 보탬이 되지 않고 안 받는다고 해서 나에게 큰 타격을 주는 돈도 아니다.

 

근데 기분이 나빴다.

 

내가 먼저 챙겨달라고 한 적이 없고 총 책임자가 기재하라고 해서 한 것 뿐인데 왜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당연히

지지 않아도 된다는 태도인건지. 

 

만일 원장과 총 책임자간에 XX분에 대한 급여 지급에 대해 의사소통이 안된 상황이었다면 나한테 40분에 대해 지급하기 어렵다. 라고 말을 할 것이 아니라 둘이 서로 소통을 다시 해보고 그 후에 나에게,

 

1) "총 책임자와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급하기 어려워졌다 미안하다" 혹은 

2) "총 책임자와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 원래는 지급하는 건이 아닌데 이번은 약속을 한 것 이니 지급을 하겠다. 하지만 8월에는 지급이 안될 것 같다" 

 

가 옳은 소통 방식이 아닌가? 미안한 기색도 없었고 40분은 절사할거야. 동의하지? 라는 화법은 과연 50살이나 된 원장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화법이었는지.

 

 

나는 삔또(?)가 상했고 이왕하는 일 열심히 한다는 내 열정을 망가뜨렸고 의욕을 상실하게 했다. 어차피 열심히 일하면 뭐하나. 돈 몇 푼으로 저렇게 쪼잔하게 구는 것을. 

 

 

소탐대실. 원장 입장에서 6000원의 인건비를 절감하는 것과 6000원의 인건비를 지급함으로써내가 좀 더 열심히 학생들을 관리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 중 누가봐도 기회비용은 후자가 크다. 작은 것을 탐하다가 이 때동안 일을 잘해왔던 기세에 찬물을 끼 얹은 격.

 

더 웃긴 건 이거다.

 

40분 안 쳐주겠다고 말한 그 다음날 갑자기 나를 불러서 40분에 대한 급여를 지급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원장 : "내가 총 책임자랑 얘기를 해봤는데 선생님이 워낙 일을 잘해주셔서 40분에 대한 급여도 지급하도록 할게요. 다음에도 일이 있을 때 또 부탁해요~^^" 

: 아, 네.

 

하루만에 소탐대실이라는 걸 깨달은 걸까? 사람이 아무리 바보라도 그 정도 수는 다 읽히기 마련인데??

 

그리고 그 날 저녁. 

 

총책임자 : A쌤, 저희 이 프로그램 앞으로 상시로 운영할 예정인데 계약 종료 후에도 혹시 계속 맡아주실 수 있을까요? 시간대는 조정 가능합니다.

 

????

 

 

추측컨데, 학원입장에서 맨 처음에는 한 달만 보고 말 사람이니까상대의 기분이 상하든 말든 상관이 없었겠지. 하지만 프로그램이 생각보다 잘되었고 계속 운영할 예정인데 관리 선생님을 다시 구하는 것보다 기존의 선생님을 활용하는 것이 리스트 관리 측면에서 훨씬 나으니까 입장을 번복한 것이다.

 

 

 

하지만 기분이 상한 것과 별개로 노동력 제공에 대해 제대로 인정을 못받고 돈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는 곳에 신뢰감이 이미 떨어졌고, 오히려 마지막으로 한 주 남은 근무 조차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작은 걸 보면 큰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 학원의 그릇은 이 정도까지인 것이고 작은 인건비를 아끼고자 머리 굴리는 곳은 결코 오래가기 어렵다. 항상 생각하지만 리더의 마인드와 리더의 업무 스타일, 리더의 지시방법 등 리더의 자질은 굉장히 중요하다. 한 조직을 흔들만큼.

 

 

과연 저 조직이 리더 교체 없이 대치동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될 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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